봉중근의 로드 투 메이저리그〈5〉 에피소드 5 : 메이저리그의 리더십
‘바비 콕스’의 ‘아버지 같은 리더십’이 그립다
〈전 애틀란타 감독〉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가 요즘처럼 많이 언급되는 때도 없는 듯합니다. 정치, 사회, 경제는 물론 아이들의 교육 현장에서조차 리더십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일반적으로 리더십을 설명할 때, 종종 팀 스포츠의 예시를 들고는 합니다.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조던, 보스턴 레드삭스의 테드 윌리엄스, 2002월드컵의 히딩크 감독 등 스포츠 현장의 리더십 사례는 너무 많이 접해서 스포츠 문외한 일지라도 누구나 익숙할 정도입니다.
우리가 리더십을 말할 때 스포츠가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치열한 경쟁의 현장과 그보다 더 냉정한 승부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데 있어서 스포츠 만한 영역이 없고, 리더십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팀스포츠만큼 직관적인 사례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계 최고 레벨의 선수들이 집결하는 메이저리그 역시 다양한 리더십을 접할 수 있는 무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영서나 자기계발서에서 접하는 리더십의 예시처럼 사실 현장의 리더십은 한 사람의 맨파워에 집중되어 있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팀 스포츠에는 필연적으로 ‘에이스’가 존재하고 공식·비공식 ‘팀리더’가 있지만, 리더십처럼 선두의 배 한 척이 전체를 끌고 가는 시스템일 수가 없습니다. 팀스포츠의 태생 자체가 개개인이 전체의 일부분으로 팀을 구성하고 함께 움직여야 하는 유기적인 집합체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스트라이커라도 슛도 쏘고 골기퍼도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아무리 뛰어난 투수라도 타자들의 득점 없이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선수들은 때로는 잘할 수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선수도 인간인지라 경기 결과가 좋지 못한 경우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메이저리그라는 극한의 경쟁무대 안에서는 홀로 살아남기 힘들다는 사실을 선수 모두 인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동료의 도움 없이는 자신의 성적과 몸값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선수들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오히려 메이저리그는 튀는 행동에 대해서는 의외로 보수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원정 경기에서는 정장을 착용해야 하는데 스타 선수가 캐주얼 복장이 좋다고 함부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팀워크를 저해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 시즌 내내 선수가 잘 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동료들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 오는데 신의를 저버린 선수를 도울 동료는 없습니다.
때문에 저는 오히려 프로페셔널한 선수의 관점에서 리더십을 바라보는 메이저리그의 실전 리더십에 더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한 메이저리그이지만 누구 하나가 이끌어가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팀워크의 하모니를 중요시하는 베테랑 선수들과 감독이라고생각합니다. 이들 역시 선수들을 리드하는 역할보다는 조력자의 역할, 솔선수범을 통한 간접적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국내 롯데 자이언츠에서 타격코치와 잔류군 총괄코치로 활동한 바 있는 훌리오 프랑코 선수의 경우, 50세까지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선수입니다. 이 선수는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리더 역할을 합니다.
프랑코 선수는 자신만의 루틴을 매우 중시하는 선수입니다. 훈련 후에는 냉온탕 샤워를 무조건 한다든 지, 식습관 역시 시간을 정해서 스테이크는 반드시 루틴에 따라 혼자 먹는 경우로 정해 놓기도 했습니다.
수십년 간 자신만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좋았던 사례를 루틴으로 적용해 나가는 모습 자체가 선수들에게는 살아있는 교육이 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감독의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최고의 명장으로 꼽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전 감독인 바비 콕스입니다. 바비 콕스는 애틀란트 브레이브스의 감독 시절( 1990~2010) 월드시리즈 우승 1회, 내셔널리그 우승 5회 포함한 14회 연속 지구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통산 2504승으로 감독 최다승 4위에 오른 명장입니다.
바비콕스 감독의 경우, 팀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의 입장일 수 있는 어린 루키 선수들을 잘 보듬어 주는 아버지 같은 리더십을 발휘하는 감독님이었습니다.
작은 실수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얼마든지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모습을 과감한 결단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바비콕스감독에 대해서는 그를 경험한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안좋은 소리를 한 것을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미국의 스포츠웹진인 ESPN은 그의 리더십에 대해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콕스는 일단 경기장에 나가면 선수에 대한 책망을 하지 않는다. 절대 나쁜 것을 얘기하지 않고 패배의 책임을 절대 선수에게 돌리지 않는다. 심지어 콕스가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애틀랜타를 떠나게 된 선수들도 순순히 인정하는 콕스의 장점이다. 웬만해서는 변화를 주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가는 뚝심도 갖췄다. 선수단 분위기는 최대한 느슨하게 각자의 자유를 보장한다. 팀이 부진에 빠질 때는 고참들이 알아서 젊은 선수들과 미팅을 소집하는 등 애틀랜타는 유기적인 조직이 됐다.”
ESPN은 이어 콕스 감독이 어떻게 ‘저니맨’을 재활시켰는지에 대해서도 이렇게 썼습니다.
“메이저리그 최고령 타자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훌리오 프랑코, 존 톰슨, 존 버킷 등 소문난 ‘저니맨’들 이었다. 그러나 애틀랜타에 둥지를 틀고 나서 전성기 못지 않은 기량을 뽐냈다.
둥지를 전전하던 저니맨들은 ‘우리’ 또는 ‘하나’라는 콕스 감독의 지도 하에 소속감을 가지고 기존 선수들과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게 되고 이는 시너지 효과로 이어졌다.”
또한 신인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로 팀을 ‘화수분’으로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신예 켈리 존슨입니다. 그는 첫 기용 후 2주간 30타수 1안타의 극도의 부진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콕스 감독은 꾸준히 기용했습니다. 그는 존슨에게 “주변 눈치보지 말고 현재 대로 밀어붙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콕스 감독의 말의 용기를 얻은 존슨은 그 후 분전해 34타수 14안타까지 끌어올렸습니다. 믿음과 인내심을 갖고 자신감을 불어넣는 콕스 감독의 믿음은 ‘화수분’처럼 신인을 키워냈습니다.
팀 스포츠이기에 선수들은 다 함께 팀을 만들어가고 성적을 내기 위한 동업자 의식, ‘파트너십’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위기를 극복하고 한단계 성장을 위한 원동력은 동료애, 즉 ‘프렌드십’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IMG아카데미에서 선수 개개인의 리더십 소양을 발전시키기 위한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현장의 교육을 통해 선수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만들고 발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감독이 나서서 팀 분위기나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환경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팽배한 미국이지만 저희 어린 선수들도 훈련 중에 누군가 뒤쳐지면 함께 ‘렛츠고!’를 외치며 독려해주기도 하고,경기 중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면 서로 강하게 다그치며 분위기를 전환시켜 주기도 합니다.
이것 모두가 진심 어린 동료애에서 나오는 ‘함께하는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코치로서 이러한 동료애 리더십을 위해서 적극적이고 세심한 소통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감독의 권위 의식은 내려놓고 소통을 통해서 팀을 만들고 이것이 성적으로 까지 이상적인 결과로 나오는 국내 팀이 바로 현재의 기아 타이거즈라고 생각합니다. 신임 이범호 감독은 얼마 전까지 선수 생활을 했던 젊은 감독답게 선수와 코칭스태프 각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역할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든 것 같습니다.
베테랑 감독들의 노하우와 야구에 대한 깊이 있는 혜안도 중요하지만 기아 타이거즈와 같이 젊은 감독이 팀 분위기를바꾸고 좋은 성적으로 가치를 증명하는 과정이 KBO 성장을 위해서도 의미 있는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최근에는 기아 타이거즈를 많이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범호 감독의 좋은 사례가 앞으로 나올 젊은 감독들에게도 훌륭한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봉중근 l 전 국가대표 투수 · IMG아카데미 야구 보딩스쿨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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