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중근의 ‘로드 투 메이저리그’ 〈4〉 에피소드 4 : 한국의 ABS를 보는 미국 야구의 시선
올해 한국 프로야구의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자동투구판정시스템)의 도입입니다. 아마추어 야구부터 시범적으로 운영하던 AI로봇에 의한 판정 시스템이 2024년을 기점으로 프로야구에 전격 도입된 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시도를 KBO에서 앞장서서 나선 것입니다.
ABS는 심판 판정의 정확성을 돕고 판정 시비를 사전에 방지해 경기 진행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야구팬들은 환영의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초기 도입인 만큼 여러가지 시행착오 역시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야구계에서는 정확한 판정으로 판정 시비를 불식시키고 공정성 문제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로부터 심판들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상식적인 의구심 역시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K-야구 역시 선도적인 자세로 과감한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흐름도 이러한 첨단 판정 시스템이 대세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제가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IMG아카데미에도 저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출신 코치들이 있습니다. 그들 역시 KBO의 ABS 시스템 도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메이저리그 출신 코치들은 대부분이 ABS 도입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야구라는 종목의 특성상 순간의 찰라에도 수많은 변수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입니다. 야구는 골프처럼 정지된 공을 타격하는 스포츠가 아닌 움직이는 공을 순간적인 판단과 반응으로 타격하는 종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근거였습니다.
역동적인 스포츠인 야구에 정해진 프레임에 정확히 맞추는 정적인 시스템의 적용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자연스럽게 들 수 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미 불과 1cm도 안되는 차이 때문에 볼판정이 나온 사례가 있고, 구장 환경에 따라서 존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KBO 선수들 역시 초반에는 대부분 시스템에 따르는 입장이었지만 경험 많은 고참 선수들을 중심으로 판정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연출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기계 역시 오류가 있을 수 있고 고장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런 사례도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메이저리그의 입장은 어떨까요?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당장 ABS를 도입할 의사는 없음을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MLB역시 트리플A를 중심으로 지난 2023년부터 로봇 심판과 사람 심판의 판정을 비교하며 시범도입 한 바 있습니다. 당초 2025년부터 ABS를 도입하겠다고 했던 메이저리그 사무국 조차 시스템 도입을 2026년 이후로 미룬 상태입니다.
세계 야구를 주도하고 있는 메이저리그이지만 그만큼 새로운 규정의 도입에 있어서는 신중하고 보수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통해 쌓인 데이터베이스와 경험치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스포츠는 사람이 몸으로 뛰는 영역이고, 그렇기에 스포츠가 위대해질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스포츠계가 한결같이 고수하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심판 판정에 있어서도 메이저리그는 ‘사람의 영역’을 중시합니다.
포수는 좌우로 한 발 더 나가고, 인사이드 유인구도 보폭 더 크게
저 역시 투수 출신이다 보니 투수와 포수의 입장에서 ABS를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현 시스템 상황에서 투수는 홈플레이트 안에서의 무브먼트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존 안에서 움직이는 공을 많이 던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과거 인간 심판이 판정을 했을 때에는 홈플레이트 앞에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 커브에 타자들이 헛스윙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ABS존을 기준으로 타자들이 타격 포인트를 맞추다 보니 유인구에 속지 않는 사례가 증가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투수 입장에서는홈플레이트 존에서 움직이는 공이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투심 비율이 더 높아질 필요가 있습니다. 투심은 속구 계열이지만 홈플레이트 존에서 좌우 움직임이 많이 이루어집니다. 때문에 투심이나 커터를 투수들은 좀 더 보완해야 할 상황이라고 봅니다. 존에서 움직이는 공들을 많이 던지다 보면 투수들은 확실히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에 따라서 포수의 역할도 커집니다. 매 타자 볼카운트에 따라서 포수들의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투수들은 포수의 미트를 보고 표적을 설정해서 던지기 때문입니다. 이미 존은 정해져 있는 상황이기에 포수가 타자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서는 좌우로 한 발 더 나가고 인사이드 유인구도 조금 더 보폭을 크게 가며 움직임이 더욱 기민하고 커져야 하는 상황입니다.
ABS 시스템을 좀 더 가져가기 위해서는 기준점의 보완도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투수의 컨트롤 영역을 넘어서는 컴퓨터 제구를 요하는 시스템의 수정이 필연적입니다.
일단 좌우 스트라이크존을 좀 더 넓혀야 합니다.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투수가 불리합니다. 타자에 따른 상하 기준도 조금 유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ABS존 역시 빠른 진행과 정확한 판정으로 야구의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한 시스템입니다.
지금 판정은 투수들을 위축시키고 타자는 기다리게 만들 우려가 있습니다. 기존의 스트라이크 존을 좀 더 확대한다면 투수 역시 불리한 상황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고 타자들은 좀 더 공격적인 스윙이 많이 나오리라 봅니다.
ABS 도입 초기에는 팬들의 기대와 성원이 워낙 컸기에 선수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따르는 입장이었지만 기계 판정의 의구심이 나오며 오히려 이에 대한 항의나 퇴장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ABS 판정에 대한 이의 제기는 메이저리그를 경험했던 류현진 선수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류현진 선수는 ABS시스템 첫 경기에서 만족감을 표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컨트롤을 자랑하는 류현진 선수 입장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공이 들어가는 족족 확실한 스트라이크판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야구와 메이저리그를 경험하며 쌓은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다른 구장에서 던지니 이전과는 다른 판정이 나왔다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는 점입니다. 상식적으로 ABS 기준이 정해졌으면 어느 구장에서 던져도 같은 판정이 나와야 하는데 류현진 선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입니다.
더욱이 류현진 선수는 속된말로 눈감고 던져도 스트라이크를 꽂는 선수입니다. 국제전은 물론 한국과 미국의 서로 다른 환경에서도 컨트롤 하나로 리그를 평정한 선수이기에 자신의 수많은 경험치가 담긴 데이터베이스와 다른 결과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ABS 시스템을 프로야구 리그 세계 최초로 시도한 KBO의 결단과 실행력에는 박수를 보냅니다. 팬과 선수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견고한 시스템으로 보완 발전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봉중근 l 전 국가대표 투수 · IMG아카데미 야구 보딩스쿨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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