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면 내부 승격"…준비된 1981년생 감독 이범호, 망신당한 KIA 쇄신한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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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3 15:52
"KIA 감독? 나라면 고민하지 않고 내부 승격을 선택할 것이다."
스프링캠프 초반 야구계 관계자들은 KIA 타이거즈 감독이 누가 될지를 두고 뜨거운 토론을 이어 갔다. KIA는 지난해와 올해 1월 장정석 전 단장에 이어 김종국 전 감독까지 구단 핵심 인사 2명을 차례로 경질해야 했다. 프런트와 현장의 수장이 함께 뒷돈을 챙긴 혐의로 나란히 옷을 벗은 건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KIA는 김 전 감독이 배임수재 혐의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까지 이어지자 계약 해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태로 망신을 제대로 당한 KIA는 분위기 쇄신에 앞장설 제대로 된 지도자를 찾아 나서야 했다.
KIA는 고심 끝에 이범호 1군 타격코치를 제11대 감독으로 선임했다. KIA는 13일 이범호 감독을 발표하면서 "계약 기간은 2년이며, 계약금 3억원, 연봉 3억원 등 총 9억원에 계약했다"고 밝혔다.
KIA가 여러 후보를 두고 신중하게 새로운 감독을 고르고 있을 때, 야구계 관계자들은 "내부 승격"을 점쳤다. 경질 시점이 그랬다. 10개 구단 모두 스프링캠프를 시작한 상황이라 이미 다른 구단에 몸 담고 있는 지도자는 KIA가 접촉하기 어려웠다. 다른 팀의 시즌 구상까지 망치는 일이기 때문. 내부 승격 아니면 야인으로 범위가 확 좁혀질 수밖에 없었다.
심재학 KIA 단장은 감독 선임 과정에서 "지금 다른 구단들이 잘 만들어져 있는 성이라고 생각을 하면, 우리가 잘못하면 그 밑에서 조금이라도 성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서 "다른 팀들은 이미 다 (코칭스태프) 셋업이 되어 있는 상태다. 데리고 오려는 코치의 영향력이 있을 수 있다. 해당 팀 팬들과 관계도 생각해야 한다. 일단 다른 팀 코칭스태프는 배제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일찍이 이야기했다.
KIA도 너무 큰 변화를 선택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외부에서 새 감독을 영입하면 코치진 개편에 손을 대야 하는 범위가 넓어질 우려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새로운 코치를 영입하기도 제한이 많긴 하지만, 내부 승격이 이뤄졌을 때보다는 변화의 폭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한 관계자는 "나라면 내부 승격을 선택할 것이다. KIA는 지금 다른 것보다 분위기 수습이 가장 중요한 상황이다. 그러려면 새 감독은 선수들부터 코치진, 또 프런트까지 KIA 내부 사정을 정말 잘 아는 인사여야 한다"고 바라봤다.
KIA는 이범호 감독 선임 배경과 관련해 "팀 내 퓨처스 감독 및 1군 타격코치를 경험하는 등 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가 높다. 선수단을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과 탁월한 소통 능력으로 지금의 팀 분위기를 빠르게 추스를 수 있는 최적임자로 판단해 선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야구계의 시선과 일치하는 선임 이유였다.
KIA는 보름 정도 만에 빠르게 새 감독을 선임하면서 선수단이 '새 감독은 누구일까'로 더는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줬다. 심 단장은 "잘못하면 현장 분위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현장에서 조금씩 전달되는 보고를 받고 있다. 선수들도 '누가 오는 것 아닌가'라고 우왕좌왕하다보면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런 우려감이 있어서 스피드를 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설 연휴까지 반납하며 사무실에서 회의를 이어 간 이유다.
이 감독은 언젠가는 KIA 지휘봉을 잡을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1981년생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KIA에서 선수로 또 코치로 지내면서 보여준 역량이 뛰어났기 때문. KIA는 코치 이범호를 차기 또는 차차기 감독으로 바라봤는데, 김 전 감독 사태로 시기가 다소 앞당겨졌다. 덕분에 이 감독은 KBO 최초 1980년대생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
이 감독은 2000년 한화이글스에 입단한 뒤 2010년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거쳐 2011년 KIA로 이적했으며, KBO리그 통산 타율 0.271, 1727안타, 329홈런, 1127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역대 통산 만루홈런 1위(17개)로 찬스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
2019년 선수 생활을 마감한 이 감독은 일본 프로야구(NPB)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메이저리그(MLB)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고, 2021년 시즌에는 퓨처스 감독을 역임했다. 나이는 어려도 지도자 코스는 제대로 밟은 준비된 인재다.
이 감독은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갑작스레 감독 자리를 맡게 돼 걱정도 되지만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차근차근 팀을 꾸려 나가도록 하겠다. 선수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면서,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자신들의 야구를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구단과 팬이 나에게 기대하는 부분을 잘 알고 있다. 초보 감독이 아닌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서 맡겨진 임기 내 반드시 팀을 정상권으로 올려놓겠다"고 포부를 이야기했다.
이 감독에게는 무너진 KIA의 명예를 회복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도 함께 넘겨졌다. 적어도 이 감독은 청렴하게 주어진 임기 동안 KIA를 다시 정상으로 이끄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 김 전 감독이 배임수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선수단 내부에서도 동요가 있었겠지만, 팬들이 받은 충격 또한 적지 않았다.
심 단장 역시 명예 회복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시작은 장 전 단장이었기 때문. 장 전 단장은 2022년 시즌 막바지 예비 FA 포수였던 박동원(현 LG 트윈스)과 다년계약 협상 과정에서 뒷돈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져 해임됐다. KBO는 검찰에 장 전 단장의 뒷돈 요구 사건 수사를 맡겼고,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김 전 감독에게도 뒷돈이 흘러간 내역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30일 장 전 단장의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서 장 전 단장과 김 감독이 후원업체에서 금품을 받은 추가 혐의를 포착하고 구속영장 청구서에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사 결과 김 전 감독과 장 전 단장은 KIA의 후원사였던 한 커피업체로부터 각각 억대와 수천만 원이 넘는 금품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커피엄체는 2022년 8월 KIA와 후원계약을 했다. 김 전 감독은 27일 구단 자체조사 과정에서는 결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에는 김 전 감독이 돈을 받은 사실은 있지만, 대가성은 아니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KIA는 한국시리즈에 11차례 진출해 모두 우승하는 역사를 쓴 명문 구단이지만,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뒷돈'으로 얼룩진 구단이라는 오점을 남기게 됐다. 프로야구 현직 감독에게 개인 비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로야구와 KIA 모두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면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KIA는 김 전 감독과 계약해지를 발표한 직후 사과문을 내면서 쇄신을 약속했다. 구단 수뇌부 모두 뒷돈 파문으로 물러난 건 명백한 사실이고, 더는 구단이 부정한 금품을 문제로 이슈의 중심에 서는 일이 없도록 처신을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KIA는 당시 "이번 사안에 대해 큰 책임을 통감하며 과오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감독 및 코칭스태프 인선 프로세스 개선, 구단 구성원들의 준법 교육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 또한, 향후 구단 운영이 빠르게 정상화 될 수 있도록 후속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KIA는 이 감독이 선임되기 전까지는 현재 호주 캔버라에서 진행하고 있는 스프링캠프 지휘를 진갑용 수석코치에게 맡겼다. 캔버라 캠프 후반기부터는 이 감독이 선수단을 지휘하며 새 시즌 준비를 계속한다.
선수들도 큰 동요 없이 새로운 감독을 맞이하게 됐다. 주장 나성범은 호주로 출국하면서 "누가 오실지는 모르겠지만 (새 감독이) 빨리 오셔서 팀을 다시 시작하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미 함께 캔버라에서 땀을 흘리고 있던 이 감독과 좋은 분위기를 이어 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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